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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아니스트 (2002) / “저는 피아니스트였습니다”

by 오야수미 202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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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이 영화의 주인공은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 '슈필만'이다. 피아니스트였던 그는 라디오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치던 중 독일의 폭격을 당한다. 서둘러 집에 돌아온 슈필만은 가족들과 함께 라디오를 듣는데, 침공한 독일에게 프랑스와 영국이 선전포고를 하는 내용이 들려오고, 슈필만 가족은 금방 이 상황이 끝날 거라는 생각에 기뻐한다. 하지만 라디오의 내용과는 달리 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군으로 인해, 폴란드에서는 유대인들을 대놓고 무시하거나 차별한다. 심지어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대규모 게토를 만들어 유대인들을 격리시켜 버리기도 한다. 슈필만 가족도 그렇게 바르샤바에 고립돼 버린다. 그렇게 게토에 고립된 유대인들은 생계가 어려워지거나, 강제로 수용소에 보내지는 등 점점 궁지에 몰린다.

 

슈필만과 슈필만의 가족도 수용소에 끌려가게 되는데, 이를 발견한 '이즈하크'(나치에 협조한 유대인 경찰 친구)의 도움으로 혼자만 빠져나오게 된다. 그리고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숨어 지내게 된다. 그러나 슈필만을 도와준 사람들도 결국 체포를 당하고, 혼자 남은 슈필만은 이웃에게 발각당한다. 결국 다시 도망쳐야 하는 상황에 놓인 슈필만은, 비상 연락망에 쓰여 있는 주소로 찾아간다. 그곳에는 게토에 격리되기 전 데이트를 하며 호감을 쌓았던 '도로타'가 있었고, 반가움도 잠시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해 아이도 갖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슈필만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인다.

 

도로타 부부의 도움으로 슈필만에게 새로운 은신처가 생기지만, 도로타가 임신을 하고 있어서인지 부부는 슈필만을 일선에서 도와주지는 못한다. 대신 조력자 '안텍'을 소개해주는데 중간에서 도와주기로 한 안텍이 도피자금을 들고 도망치는 바람에 그는 다시 죽을 고비에 처한다. 다행히 도로타의 발견으로 목숨을 건지지만 부부도 위험한 전쟁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이주하게 되며, 다시 혼자가 되고 만다. 이후 바르샤바 봉기가 일어나며 지금의 은신처 또한 위험해지자 슈필만은 이전에 빠져나왔던 게토로 향한다. 폐허가 된 게토에서 추위와 허기를 견디며 간신히 버티던 그의 앞에 나치 장교가 등장한다. 독일군 장교 '호젠벨트'는 그에게 누구냐고 묻지만, 슈필만은 '피아니스트'라고 대답한다. 그의 말에 호젠벨트 장교는 피아노 앞에 슈필만을 데려가 연주를 시킨다. 그곳에서 슈필만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피아노 연주를 시작한다.      

 

 

홀로코스트 실화 영화

 

홀로코스트 관련 영화 중에서도 단연 수작이라 인정받는 영화 '피아니스트'는 폴란드 태생의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홀로코스트 실화 영화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슈필만의 이야기를 100퍼센트 온전히 담아 내진 않고, 실화에서 많이 각색했다고 한다) 1945년 전쟁이 끝난 직후, 폴란드에서 피아노 연주가로 활동하며 폴란드 대중음악 작곡가가 된 그는 <도시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내지만 당시 공산주의 정권에게 검열당한다. 그로부터 약 50년이 지난 1998년, 도시의 죽음은 <피아니스트>라는 제목으로 재출판된다. 그리고 2002년, '로만 레이먼드 폴란스키'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다. (감독도 유년시절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라고 한다)

 

영화는 살아남은 슈필만을 보여주며, 그의 생존에 여러 도움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한쪽에만 편향되지 않게 다양한 인간상을 보여주며, 영화를 보는 우리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인 감상평>

 

처음 이 영화를 본 건 중학생 때였다. 좋은 작품을 우리에게도 소개하고 싶어 했던 좋은 선생님을 만난 덕에, 조금은 빨리 이 작품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성인이 되고 2번째로 본 '피아니스트'는 처음 봤을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한쪽에 치우 처진 자신의 주관적인 가치관을 영화에 대입시키지 않은 감독 덕분에 우리는 더욱 이 작품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다. 잔인한 유대인 학살의 면모를 꾸밈없이 보여주고 이중적인 면모를 가진 캐릭터들도 많이 보여주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 작품은 마치 남겨진 우리에게 숙제를 남기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길고 긴 전쟁이 끝나고, 다시 평화를 찾게 된 슈필만을 봐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그건 아마 전쟁의 상처가 남긴 잔재일 것이다. 다른 유대인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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